그렇게도 기다렸던 WWDC08이었는데...ㅠ.ㅠ
한국시간으로 6월 10일 새벽 2시반경부터 시작된 WWDC08 스티브잡스의 키노트. 이미 많은 루머속에 iPhone 3G의 출시가 확실시 되고 있던 상황에서 전체적으로 키노트의 신비감이 많이 반감되 버리긴 했다. 예전부터 느끼는 건데 키노트를 하기 전에 모든 정보를 철저히 차단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라.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한 제품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앞에 섰는데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는가?(물론, 이것은 순전히 발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것이다. 뭐, 기다리는 사람들 애타는 심정이야 더할텐데 말해 뭣하겠는가?) 암튼, 큰 기대감(사실 너무 기대감이 커서 이성을 잃어버렸을 정도다.)이 큰 상실감을 가져왔다. 결국 한국에서 iPhone을 만나보는 것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ㅠ.ㅠ 그리고 더 견디기 힘든것은 년말까지 70개국에서 출시가 이뤄진다는 것이다.(너무 견디기 힘들다.)

애플에게 iPhone이란?
이것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70개국에 런칭하는 것을 iPhone 1주년 축하 선물로 공개를 했다. 이 사람들 아이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면 올인수준이다. iPhone이 플랫폼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iPhone SDK, MobileMe, Enterprise... 우리나라에선 Enterprise가 잘 먹힐진 모르겠지만....) 그리고 iPhone이 언락되어서 외국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1000만대.... 이 공급 목표를 위해서 약진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터넷의 진화된 모습이 모바일이 될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 보인다.(아니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키노트에서 의자의 다리에 비유한 것처럼 애플이라는 회사를 존재하게 하는 큰 축이 되었다.(세 축은 맥, 음악, 아이폰이다.) 정말 갖고 싶은 멋진 하드웨어에 놀라운 소프트웨어까지 갖춘 아이폰. 거기다 개발자가 삽질을 해서 결과물을 나눠주면 돈까지 벌어준다.(애플은 AppStore라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iPhone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공급하는 개발자들에게 책정된 가격의 70%를 보장해 주겠다고 했다....ㅠ.ㅠb) 암튼 플랫폼으로서의 모바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뒷쳐지고 있는 한국의 모바일 환경이 무척 안습할 따름이다.(KTF와의 협상이 잘 되서 년말에는 좋은 소식을 접할 수 있었으면....) 이 시점에서 애플에서 iPhone은 "Next Big Thing"이 아닐까?





WWDC 2008 Highlights iPhone 3G

WWDC08 키노트 정리
이번 키노트는 아이폰 올인.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이선으로 물러나는 듯한 키노트 진행이 눈에 띄었다. 뭐, 몇 명이 올라와서 바톤을 터치하듯이 진행하는 키노트는 몇 해전부터 계속해서 있어왔지만 작년부터 아이폰을 밀어주면서 스캇 포스톨이 급 부상하고 있다. 아이폰 소프트웨어를 총괄하고 있는 스캇은 어딘지 스티브 잡스와 많이 닮은 듯한 인상이다.(이미지가 그렇다는 거다. 젊고 스마트하다는 인상이다...^^) 앞 부분은 3월에 있었던 아이폰 로드맵과 약간 겹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Enterprise는 영상으로 대신하고 아이폰 SDK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데모로 채웠다. 로드맵을 소개하고 여러 개발 업체들이 개발을 시작한지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정말 많은 소프트웨어들이 만들어 지고 있다.


Super Monkey Ball on the iPhone! (iPhone SDK)
이런 류의 3D게임이 쏟아져 나온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더해간다.(이러다가 정말 구매대행으로 사버리는 건 아닐지... 자꾸 앞에 있는 iPod Touch가 애처로워 보인다.) 이렇게 정신없이 소프트웨어로 융단 폭격을 하더니 MobileMe라는 서비스로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루머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기존의 .Mac서비스를 데스크탑, 노트북, 모바일 어디서든 싱크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Mac의 업그레이드 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의 키노트 진행을 맡은 필 쉴러의 말처럼 "마치 데스크탑 소프트웨어를 쓰는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유연함"을 자랑하는 서비스이다. 서비스의 완성도가 무척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바스크립트, AJAX 기능도 많이 들어가 있는것 같은데 무척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맘에 들었다. 물론 1년에 $99(한화로 10만원이 조금 넘는...)을 지불하고 써야하는 서비스라서 게다가 아이폰도 없는 마당에 그닥 구미가 당기진 않지만 모바일로 사업을 하려면 이런 것도 갖춰야 한다는 모범사례 정도로 생각하면 될것 같다.(3G 아이폰이 한국에 출시된다면 생각해 봄직한 서비스... 게다가 용량도 12GB면 괜 찮은 것 같고...)

키노트 말미를 장식한 3G 아이폰. 아이폰 1주년을 기념해서 2세대로 발매되는 3G 아이폰. 모서리가 더 얇아지고(본체까지 얇게 만드는 것은 아직인듯....) 3G로 더 빨라진 인터넷 속도에다 GPS까지 내장한 놈이다. 3G로 가는 것이 아이폰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의 답답함을 많이 해소해 줄것이라고 생각된다. 실제 테스트에서 많이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조금 더 살펴보면 기존에 2G방식과 새로 나온 3G 그리고 WiFi를 이용한 테스트가 있었다. 3G에서 속도가 잘 나오자 스티브 잡스가 한마디 한다. "보시는 것 처럼 WiFi 속도에 점점 더 가까워 지고 있는 것이 보이죠!"(무선랜이 있는 지역보다 3G망에 접속해서 인터넷을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고 모바일쪽 속도가 무선랜 인프라를 넘어설 날도 올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아이폰 판매 국가를 발표하는 시간. 세계지도에 붉은 색으로 채워지면서 들리는 축하곡. 그 축하곡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며 환호하는 사람들. 저도 그 속에 한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빠지는 바람에 실망하고 말았죠. 게다가 가격이 8GB가 $199이랍니다.(아이팟 터치를 팔까 봐요....ㅠ.ㅠ) 2.0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아이팟 터치는 만원 정도를 부담해야 합니다. 3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가격보단 싸지만 아이팟 터치는 주류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ㅠ.ㅠ

나에게 iPhone이란?
이번 키노트를 보면서 한국에 아이폰이 발매되지 않아서 실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장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앞선 흐름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아이폰을 통한 모바일 플랫폼으로의 확장을 실천하는 애플. 모바일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보고 싶어졌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취미활동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어쩌면 모바일로 대박을 터트릴지도요...ㅠ.ㅠ) 지금 시점에서 제게 아이폰이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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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 소식

어제 제닉스님 블로그에서 접한 내용입니다. 예전에 본 영상 중에 멀티터치를 이용한 영상이 있어서 재미있어서 링크를 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서피스라는 제품을 시연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품에 대한 시연 모습은 D컨퍼런스에 나왔던 것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빌게이츠가 들고나와서 시연하던것에 약간의 변형을 가한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아마, 그때부터 진행이 되고 있었다는 거겠지요.) D컨퍼런스 시연에서 나왔던 기능들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영상은 스티브 발머 MS CEO와 월트 모스버그의 대담인데요.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번씩 보시면 재미 있습니다.(MS 직원 수가 78000명이나 되는군요...ㅠ.ㅠ 대단하네요. 공룡 맞네요.)




서피스에 대해 공개된 간략한 사양
윈도우비스타 기반이다.(윈도우 비스타 PC가 들어가 있다...ㅠ.ㅠ 사양이 궁금합니다.)
표면 아래쪽에 카메라가 5개 들어가 있어서 어떤 동작이(입력) 일어나는지 인식함.(중앙에 하나, 코너에 4개인듯...)
표면은 단순한 플래스틱이다.(제닉스님 영상을 보면 쓱쓱 긁는 소리가 납니다....)
DLP프로젝션처럼 상을 뒤집어서 보여주는 방식을 사용.


서피스 데모
데모는 몇가지 분야에 걸쳐서 진행이 되는데요. 첫번째 간단한 몸풀기 Paint 프로그램입니다. 손으로 서피스 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붓을 이용해서 그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두번째 멀티터치 인터페이스입니다. 사진을(동영상) 여러명이서 자유자재로 리사이즈하고 옮길 수 있습니다. 서피스의 인식 기능을 이요해서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무선통신(WiFi)이 지원되는 디지털카메라로 서피스로 가져옵니다.(흠, 쓸만한데요...^^) 세번째 예약 시스템에 대한 예를 보여줍니다. 특정 지역에 있는 식당을 이용할 경우 태그를(카드형태, 바코드의 그것과 비슷한 시스템이라고 함.) 대면 사용자를 인식해서 보고 싶은 공연을 예약할 수 있다는 겁니다.(지도는  버추얼어쓰를 사용한답니다.) 네번째는 식당에서 의 활용 예인데요. 식당에서 웨이터에게 의지하지 않고 서피스를 통해 주문을 하면 바로 주방으로 주문이 된다는 겁니다. 나중에 디저트를 주문할때 팁 비율까지 선택할 수 있군요. 다섯번째는 핸드폰을 구매할 때 매장에서 핸드폰을 서피스 위에 놓으면 사양과 가격이 나오고 다른 핸드폰을 놓으면 가격과 사양을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요금제를 설계해서(부가서비스, 벨소리, 데이터 요금제 등...) 끌어다 놓으면 다음달에 청구된답니다.
Q. "도대체 이걸(서피스) 어디에서 사용하는 건가요?"
A. "에.. 일단 카지노에... 고급식당에..."
Q.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판매가 되나요?"
A. "네.. 됩니다."


서피스의 활용 분야들
호텔, 식당, 병원, 정보통신쪽에서 사용될 것을 예상하고 있으며 호텔 카지노쪽과 구체적인 협상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일반 소비자용으로도 출시가 될것이며 가격은 점점 내려갈 것이라고 합니다. 올해까지 나온 얘기로는 아직 소비자가가 5천달러에서 1만달러 사이에 책정이 되서 나올거라고 합니다...ㅠ.ㅠ 아직은 그림의 떡이라는 얘기가 되겠네요. 스티브 발머 CEO는 단가가 얼마나 빨리 낮춰서 소비자들에게 가격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하네요. 시연 내내 강조하는 것은 서피스 컴퓨터(컴퓨터라고 부르진 않았지만 비스타가 들어가 있으니까요...)는 멀티터치가 주요 기능이나 강조점이 아니라 디지털 브릿지(허브)로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부분을 내내 강조합니다. 사실 멀티터치는 사용해 보면 그렇게 사용빈도가 높은 인터페이스는 아닌것 같습니다.(iPod Touch의 경우입니다.)

시연중에 우리 월트 옹께서 한마디 합니다.
"근데 이거(서피스) 부팅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대답입니다.
"항상 켜있어요....ㅠ.ㅠ"



미래를 대비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제가 예전에 교육을 받을때 강사로 오신 교수님께서 이런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불사조 마이크로소프트"라고 어떤 경쟁자나 외압(소송들...)이 있어도 견뎌내고 이기고야 마는 마이크로소프트인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제가 봐도 그 말은 맞는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불사조라기 보다는 의외로 준비가 생각보다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외라는 것은 자만하지 않고 있다는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책잡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아래 영상에서 몇가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마찬가지로 D컨퍼런스에 나왔던 스티브잡스와 빌게이츠의 대담인데요.(이 영상도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미래의 컴퓨팅 환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빌게이츠는 3D인터페이스와 상방향 커뮤니케이션등에 대해서 강조하고 실제로 몇년 안에 실현 될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한꺼번에 실현되지 않고 단계적으로 하나씩 구현이 될것이라고 하죠.



그렇다면 애플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스티브잡스는 이 질문에 대해 여전히 두리뭉실 답변을 합니다. 애매모호하게 답변을 하죠.
미래는 모르는 거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소비자들은 바퀴가 6개 달린 차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퀴 4개 달린 차를 원한다. 또한,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조이스틱을 사용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ㅋㅋ 조이스틱...)

제가 보기에도 우리 소비자라고 표현하는 속에 많은 시사점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장치(기기)를 사용하게 하도록 하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생각해야 하고 더 많이 연구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미래의 컴퓨팅 환경이 어떻게 바뀌든지 간에 자신들이 만드는 서비스가 (우리)소비자들에게 얼마나 큰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암튼 서피스 대단한 물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가격이 현실화 된다면 정말 거실에 놓고 아이들과 함께 멀티터치를 사용할 날을 기다려 봅니다....^^


관련링크
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 페이지 : http://www.microsoft.com/surface/default.aspx
홍보 영상 : http://link.brightcove.com/services/player/bcpid932579976?bctid=933742930
http://www.engadget.com/2007/05/31/microsoft-surface-hands-on/
http://arstechnica.com/news.ars/post/20070530-what-lurks-below-microsofts-surface-a-qa-with-microsof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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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시하는 모든 제품이나 소프트웨어의 비디오 가이드 투어가 필수요소인거 같네요. MAC 메뉴에 들어가 보면 가이드 비디오가 넘쳐납니다.....^^ 뭐 실제로 보면서 기능을 숙지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비디오 메뉴얼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일일이 만들어서 서비스하기도 함들텐데요....^^ 암튼 이제 점점 시간이 다가 옵니다. iMac으로 갈아타야 할 시간이.... 꼭 24"로 가고 말리라....^^ 한번씩들 보세요....^^

레오파드 비디오 가이드 투어
(QuickTime Player가 필요합니다.)



애플 한글 페이지가 한글 서비스를 통합하더니 소식은 빨라진것 같은데 아직은 느린것 같습니다. 비디오 가이드 투어는 영어버전만 공개가 된것 같습니다. 일본어 버전은 아직인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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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중 어떤 한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 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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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WWDC2007에 등장할 것 같더니 10월까지 연기된 모양입니다. iphone에 주력하느라고 인력을 그쪽으로 많이 투입해서 작업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거의 완성단계이며 빨리 발표하는 것보다 안정화 시키는데 주력하겠다는 의지로 보이네요. 2007년에는 여러모로 바빠질것 같은 Apple이네요...^^

4월 25일 2/4분기 실적 발표를 Webcast로 생중계한답니다.(http://www.apple.com/quicktime/qtv/earningsq207/)

그나 저나 이건 진짤까요?
진짜라면 제법 재미있는 장난감일듯....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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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homepage index page(2007.01.01)

2007년 년초부터 궁금증이 커집니다. 모든 것은 키노트에서 밝혀지겠지만 1월 8일까지 기다리는 것이 너무 길게 느껴지네요. apple 홈페이지에 가서 그 동안 올라온 스티브잡스의 keynote들을 둘러보면서 마음을 달래 봅니다.

"지난 30년은 시작에 불과했다"

여기저기서 추측성 기사가 난무하고 루머사이트에서는 별 희한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하면서 소문내기에 열을 올립니다.(물론 우리나라 언론은 대단히 조용합니다....^^) 몇년 전 조선일보 기자의 Keynote 참석기를 읽은 기억이 나는데요. 한 마디로 "뭐, 재미있어하고 열광하긴 하는데 조금 이상해 보이더라.." 정도였습니다. 그 글을 읽을때는 그런가 보다 했었죠....^^ 암튼 뭐 그건 다른 얘기구요....^^

ilife07, iWork07, itv(가칭), iphone(가칭 & 소문), OS X 10.5, 6세대 iPod 시리즈 등등... 이외 어떤 깜짝 발표가 있을지 벌써 부터 기대 됩니다. 1월 8일(월)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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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OS 9의 장례식

2006.11.09 01:53 from Apple
WWDC 2002에서 맥OS 9의 장례식을 치뤄버리는 장면입니다.
OS를 바꾸는 것은 대단한 모험일텐데 그 와중에도 고별사(외국 영화에 보면 "그는 우리 모두의 친구였습니다...."로 시작되는 고별사...)를 하네요... 어쨋든 지금의 상황을 보면 성공적인 선수교체를 이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시 천역덕스럽게 연기를 소화해내는 스티브 잡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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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Keynote가 개발되기 전인것 같네요...^^
여전히 열정적인 스티브 잡스지만 사용하는 도구들이 상당히 예전이라는 것을 말해주네요...^^
PT 스타일은 여전합니다....^^ 듣고 있으면 빠져든다는....^^

His Stev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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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스탠포드 졸업식장에서 한 연설.
너무 유명하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무척 솔직하고 진솔한 연설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So why did I drop ou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She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and his wife.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want him?"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tuition.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it ou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ones that looked interesting.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그렇다고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하는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example: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든다면

Reed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None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it all came back to me.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우리가 설계한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중 어떤 한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2A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 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This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한국어 해설 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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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OkIE 트랙백 1 : 댓글 0


부제를 왕의 귀환이라고 달아 봤습니다.
1997년 애플은 그동안의 많은 구조조정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기에 몰려 있었다고 합니다.
제 기억에도 맥클론이라고 해서 매킨토시를 제조해서 만들 수 있는 없체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매킨토시 판매 활성화의 일환으로 시행된것 같은데 스티브잡스가 돌아오면서 다시 이 회사들에게서 매킨토시 제조 라인을 사들이게 됩니다.(이 맥클론 업체들 중 한국인이 경영하던 업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애플에 회사를 팔아서 많은 이익을 남겨서 신문에도 소개되었었죠....-.-a 기억이 가물 가물..)

암튼 애플의 새로운 CEO로 복귀를 하고 처음 맞이하는 맥월드에서 스티브잡스가 단상에 오르는 장면입니다. 기립박수로 환영하는 청중들이 보이시죠? 암튼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쫒겨나고 다시 그 자리를 찾은 스티브 잡스의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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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OkIE 트랙백 0 : 댓글 0